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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재

뿌리로 닿는 길

계기는 어떤 현상이나 사건의 틈에서 조용히, 격정적으로 생겨난다. 계기가 변화로 확장되는 순간은, 그 파동이 크고 파동에 대한 믿음이 확고할수록 더욱 견고해진다.
설치미술, 미디어 작업, 퍼포먼스를 오가는 스물일곱의 현대미술가가 갑자기 프랑스로 떠나 13년을 보낸 것도, 마흔에 다시 한국에 돌아와 하던 작업은 물론 인간으로서 생의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것도 모두 어떤 고요하고 격렬한 계기에서였다.
자신의 집을 지은 뒤, 그는 계속해서 산천을 걷고, 수묵화를 그리고, 도자를 빚고, 자신이 빚은 그릇으로 차를 마실 것이다.
이 모든 행위가 뿌리를 따라 걷는 걸음이라면, 그는 자신의 근간을 파고드는 아주 깊은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인왕산 자락이 품은 서촌 누하동에 ‘이서재利敍齋’가 있어요. ‘이서利敍’라는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죠. 처음에 이 작고 오래된 한옥을 어떻게 발견해 이름을 붙였는지 과정이 궁금해요. 
이서재는 ‘이롭게 펼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이서’라는 제 이름의 뜻이 그랬고, 그런 의미의 집을 가지면 좋겠다 생각했죠. 이 집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인왕산 때문이었어요. 2015년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 꼭 산으로 돌아가는 마음과 같았거든요. 밤에 서촌 골목골목을 걷다가 문득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을 만났어요. 도대체 이곳이 어디길래 서울 땅에 이런 어둠이 있을까 싶어 앞서 오는 사람에게 물으니 인왕산이라는 거예요. 이곳에 살면 매일 산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곧장 이 동네에 집을 알아봤고, 제일 처음 찾은 집이 바로 지금의 이서재예요. 물론 당시 모습은 지금과 전혀 달랐어요. 열 몇 평 되는 아주 작고 낡은 집에 대가족이 살아왔대요. 작은 집에 큰 가구가 가득 차 공간이 너무 작게 느껴졌어요. 구석구석 천천히 살펴보니 옛 문, 기둥, 대들보가 매력적이고 좋더라고요. 전세 계약 결정을 하고 한 달 반 동안 침낭에서 잠을 자며 홀로 공사를 했어요. 도배와 부엌 공사, 조명, 보수 등 원래의 집 형태를 잘 유지하면서 마감하는 데 한 달 넘게 걸렸지요. 집을 거의 새로 짓다시피 하면서도 새로 디자인하거나 어떻게 꾸미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어요. 그저 꼭 필요한 것만 두고 싶은 마음이었죠. 한옥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거든요.

작업의 뿌리를 찾으러 파리로 떠난 거네요. 그러다 다시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와 이서재를 지어 살고, 산천을 거닐며 주변 풍경과 삶의 이야기를 수묵으로 화폭에 담고, 도자를 빚는 등 미디어가 극적으로 달라졌어요. 파리에서 보낸 13년, 작업과 삶의 방향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특별한 시공간이었을 텐데요. 
결과적으로는 방향의 전환이지만, 멀리서 바라본다면 결국 하나의 맥락이라고 할 수 있어요. 본질과 뿌리에 대한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확장되었고, 동시에 점점 깊어졌을 뿐이죠. ‘프랑스 유학’을 통해서는 예술에 대한 교육보다 그 나라의 제도, 뿌리 깊게 박힌 프랑스인의 생활 방식, 사회와 자신에 대한 그들의 태도,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인식 등 무의식 속에 배어 있는 인본주의적 삶, 함께 살아간다는 공동체 의식, 검소한 삶의 방식 등을 배웠어요. 자본주의 사회지만 법, 규칙, 제도 등이 사회주의적인 동시에 매우 인간 중심적이었어요. 신자유주의 자본론을 따르는 한국과 전반적으로 상반된 태도인 거죠. 그들은 자기 땅에서 난 문화를 소중히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기꺼이 즐겁게 누려요. 이 모습을 보면서, 땅에서 싹틔운 생각의 뿌리가 삶 전반에 걸친 문화와 행동의 근거를 만든다는 것을 느꼈죠. 자연스럽게 나와 우리의 문화를 돌아보게 했어요. ‘우리의 문화적 근간은 무엇인가’하고. 동시에 작가로서 ‘어떤 작가가 되어야 하는가’, ‘나다운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까지 닿았죠. 파리에서 보낸 13년은 서구의 지식을 학습한다기보다 차이를 이해하는 시간, 인간적인 성찰의 시간이었어요. 나와 우리 문화의 근간, 뿌리를 찾아가는 걸음의 시작으로요.

이서재에 들어서면, 문과 가장 가까운 왼편에 간소하면서도 평온한 기운을 간직한 차실이 있어요.  
프랑스에 유명한 카페가 있었어요. ‘카페 드 라 페Café de la Paix’인데, ‘평화 카페’라는 뜻이에요. 그 이름이 늘 머릿속에 있었던지라, 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단박에 ‘평화다방’이라고 이름 붙여야겠다 싶었죠. 이 공간에서 차를 마시면서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오전 10시 즈음부터 마당에 심어놓은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만들어내는 햇볕 그림자가 차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해요. 그게 참 좋아요. 찻그릇에 차를 담아 마시고 있자면, 말 그대로 정말 평화가 찾아오는 거죠.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이서재에서 지내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 적 있나요?  
사람들은 이 집이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화려한 집은 아니잖아요. 있어야 할 것이 있는 집이죠. 다르게 보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집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저는 그 안에서 집과 하나 된 모습으로 있기를 바라요. 그저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요. 그림을 그리고, 도자를 빚고, 빚은 그릇에 차를 마시면서 언제까지든 집과 함께 수평적이고 낮은 자세로요. 이서재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삶과 집을, 작품과 제 자신을 따로 두지 않고 하나로 일치하고자 함이에요. 만약 누군가 멀리서 이서재를 바라본다면, 제가 집이 간직한 느낌과 풍경 안에서 그대로 묻혀 집과 제가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면 좋겠어요.

















"자연스럽게 나와 우리의 문화를 돌아보게 했어요. ‘우리의 문화적 근간은 무엇인가’하고. 동시에 작가로서 ‘어떤 작가가 되어야 하는가’, ‘나다운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까지 닿았죠."

자세한  내용은  매거진 < 부엌 > Vol.7 < 차 >편, 이서재의  '뿌리로 닿는 길' 인터뷰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P65)

Interview Lee Seojae
INSTA @iseojae_roots_project

Editor Bae Danbee @danbeebae
Photographer Jun Yeseul  @2rru0